개인적인 '소설'에 대한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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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1 10:29
... 실은 샤워하다가 문득 생각난 잡설.
그리고 아마 최근 글을 쓰느라 분전중인 모 친구에게 하는 이야기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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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나는 이미 '문화의 소비자'라는 측면에서는 기성세대적인 면이 강하고 이러한 나의 취향은 오늘날에 있어서는 소수의 의견에 국한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마, 이 글을 보게 될 지인들은 대부분 나랑 취향이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특히 '최근의 주류'와 '자신의 취향'에서 갈팡질팡하는 모 작가를 위해 이렇게 한번 글을 써 본다.
2. 캐릭터성
우선은 캐릭터성에 대한 이야기.
나는 '캐릭터성', 좀 더 구체적으로 '캐릭터의 개성'이라는 것이 단 한 문장에 요약되서 정리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캐릭터는 적발 적안의 츤데레이며, 메론빵을 매우 좋아한다"라던가 "이 캐릭터는 무기로 총을 사용하며 카레를 광적으로 좋아하고 주인공에 대한 호칭이 특이하다"라던가, 이런 요소들은 '모에 요소'로는 작용할 수 있겠지만 결코 '캐릭터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캐릭터성이 단순한 외모나 특징, 고유의 말버릇이나 특이한 행위/버릇 등으로 간단하게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러한 면에 집착하는 것은 입체적이고 살아있는 캐릭터가 아닌, '작위적인 캐릭터성 부여'로 그 인물을 더 죽이는 점이 아닌가 한다. 무엇보다, 읽고 있는 독자 - 최소한 내 입장 - 에서는 이러한 의문점을 갖게 한다. "이 캐릭터는 어째서 이런 특이한 말버릇을 갖고 있는 것인가?" "이 캐릭터가 이 음식을 이렇게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캐릭터만 이런 무장을 휴대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전후관계의 생각 없이 단지 부차적인 개성만을 부여하기 위해 강제로 고안된 장치이고, 생각없이 그걸 향유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아무 말도 할 수 없겠다만.
생각컨데, 가볍게 즐기고 끝낼 뿐인 유희용 이야기가 아닌 이상에야 굳이 어투나 버릇의 차이 등에 집착을 둘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물론 어투나 버릇의 명확한 차이는 그 캐릭터를 조금 더 차별화시키는 요소가 된다는 데에 이의는 제기하지 않는다. 단지, 평범한 말투에 특이한 버릇을 가지지 않은 캐릭터들도 충분히 차별화되어 그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
예를 들어보자. A와 B라는 두 명의 남자가 있다. 특이한 말버릇도 없고, 특출난 버릇도 없다. 허나 한명은 성격이 차분하여 생각이 깊고 언행을 조심스레 하는 반면, 한명은 쾌활하여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고 말주변이 대단히 빠르다. 이제 이야기를 진행하다보면, 특이한 돌출점 없이 두 사람의 행동에 따라 독자들은 이 둘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굳이 작가가 직접적으로 'A는 과묵하고 B는 수다스럽다'라고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A는 주로 경어를 쓰고 B는 깡패같은 말투를 쓴다'라고 설정해주지 않아도, 'A는 도끼를 휘두르고 B는 창을 휘두른다'라고 굳이 분리시키지 않아도, 이 둘의 캐릭터성은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천천히 부각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3. 스토리
이야기를 조금 더 진행해보자.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상황이 주어지면 스토리는 알아서 흘러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캐릭터는 중요하다. 이제 작가가 그 캐릭터를 면밀히 이해하고, 전후 상황을 확실하게 검토하여 특정 시점에서 서술을 시작할 때에 그것은 하나의 '스토리'가 된다고 생각한다.
아까 언급했던 A와 B의 이야기를 좀 더 세부적으로 풀어보자. 같은 마을에서 태어난 A와 B는 나이도 같고, 체격도 비슷하다. 그런데 A는 어렸을 적부터 대장간에서 일해서 근력이 뛰어나고, 친구와의 싸움에서 크게 다치게 만든 적이 있어 이후 언행을 조심히 하게 되었다. B는 이성으로부터 인기가 많아 조금 능글맞은 성격에 언변도 청산유수처럼 하게 되었다. 둘이 마을에서 여행을 떠나던 날, A는 대장간 주인으로부터 도끼를 선물받았고 B는 아버지가 군인이었던 시절 사용하셨다는 창을 들고 떠나게 되었다.
이렇게 캐릭터가 주어졌다. 비슷한 출신 배경을 가졌지만 명백히 다른 성격을 가진 다른 캐릭터다. 이제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둘의 성격이 부각된다. 전형적인 서양 판타지의 갈등구조인 선악 대결체제를 생각해보자. 악의 무리는 세상을 파멸시키고자 하고, A와 B는 그걸 막기 위한 여행을 하게 된다. 이에 A와 B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도움을 주는 사람들, 방해하려는 무리들. A는 매사에 대단히 신중하고 주저하며, B는 이러한 A의 행동을 너무 느리다며 규탄한다.
요는, '외부 기재'에 의해 '캐릭터들'이 각자 자신의 성장 배경과 성격 등에 의거한 다양한 반응을 보이면서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 이러한 개연성은 입체적인 캐릭터와 - 비록 허구에 근거한 소설이라 할 지언정 - 사실적인 스토리 묘사에 힘을 실어준다.
어느 소녀가 뜬금없이 마법의 힘을 얻어 갑작스러운 충동으로 세상을 구한다고 해보자. 캐릭터의 행동 동기, 이야기의 개연성, 그 무엇 하나 존재하지 않는다. 이 소녀가 아무리 특이한 버릇과 식성과 말투를 한다 할 지언정, 스토리의 개연성이 없는 이상 결코 입체적인 캐릭터는 되지 못한다.
4. 여타 글에 대한 이야기
1) Belgariad / Mallorean - David Eddings
외전을 제하면 총 10권짜리 판타지 소설. 서양 판타지 소설이 대부분 그렇듯, 전형적인 선악의 갈등 구조로 되어있다. 1부의 주요 내용은 주인공인 Belgarion이 점차 성장하여 악신과 대결한다는 내용. 2부의 주요 내용은 그가 납치당한 아들을 구출하러 가는 것이 주. 사실 반전 플롯만으로 보면 그다지 참신하다고 할 만한 내용은 없다. 1권 앞부분만 봐도 주인공이 왕의 혈통이라는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비밀이 밝혀지고 즉위하는건 4권에서야 나오지만)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글을 매우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보다 깔려있는 복선들을 매우 섬세하게 처리하였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언급없이 짤막짤막한 회화 속에 집어넣으면서 4권 즈음 이르러서는 독자가 '과거사'에 대한 진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라던가. 주인공의 혈통에 대한 암시를 계속해서 중간 중간 집어넣다가 4권 마지막에 그걸 파격적으로 풀어낸다던 점이라던가.
사실 비단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훌륭한 '복선'과 그걸 멋지게 처리하는 것은 어느 소설이라 할 지언정 필수적인 요소가 아닐까 생각된다. 무엇보다 하나의 '스토리'에 개연성과 완결성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느낌을 준다는 점과 더불어, 얼마나 탄탄한 배경 설정 위에 설립된 것인지 감탄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2) The Wheel of Time - Robert Jordan
현재 11권까지 발매. 아직 미완결. 역시나 서양 판타지 소설 답게, 선악의 갈등구조로 이루어져있다. 악의 화신은 세계를 붕괴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주인공은 그걸 막기 위해 분전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
내가 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에 단연코 최고라고 치는 것이 바로 이 시리즈이다. 비록 선/악의 명확한 갈등 구조로 나뉘긴 하지만, 캐릭터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자신이 믿는 '선'을 위해 아집에 빠지는 캐릭터가 있다. 자신의 행동이'악'에 의해 기인한 것인지 모르는 캐릭터도 있다. 11권이 지난 지금까지 자신의 야심을 위해 움직이는 것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주인공에게 충성하는 것인지 짐작조차 안가는 능구렁이 캐릭터도 있다. 등장 인물들이 각자 자신의 생각과 신념에 따라 행동을 한다. 이해득실을 따지고, 자신을 위해 행동한다. 하지만 단지 그러한 성격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환경에 맞춰 점차 성장한다. 누구는 좀 더 완고해진다. 누구는 좀 더 유연해진다. 누구는 남을 믿지 못하게 된다. 그야말로 상황과 인물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정말로 "그럴싸한", "개연성 있는" 스토리를 창조해나간다.
탄탄한 배경 설정 역시 감탄을 자아낸다. 1권에서 지나가던 말로 나온 짧은 회화가, 8권이 지난 다음에야 주요 전개를 위한 복선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곳곳에서 간간히 언급된 이야기가 외전에서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로 등장한다. 계속해서 언급되던 신화는 5권에 이르러서 그 신화가 얼마나 와전되어 전해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실은 모 설정 원안에 제일 큰 영향을 준 시리즈이기도 하다. 방대하고 타이트하게 짜여져있는 원안 구성은, 다름이 아니라 전후 복선 설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 다양한 인물에 대한 전후 스토리 설정은, 각자 사건을 겪으면서 어떤 성장을 하게 되는 지에 대한 것. 무엇보다 권당 700~1000 페이지라는 방대한 분량. 이러한 장대한 대서사시를 감안하면서 원안을 작성하였으니, 밑도끝도 없는 분량이 나올 수 밖에.)
3) 은하영웅전설 - 다나카 요시키
고등학교 시절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적어냈던게 양 웬리이었던 기억이 있다. 비록 허구 속의 인물이긴 하지만, 민주주의의 허실을 대단히 적나라하게 가르쳐주었던 인물. 예전에는 은영전에 대한 각종 비판을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였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은 이 소설의 맹점이 이래저래 보이는 듯 하다.
그래도 여전히 훌륭한 구성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용된 기재가 어찌되었던 간에, 소설의 두 주인공에 대한 부각을 대단히 잘 이루어내고 있다. "천재"라고 묘사할 수 있는 두 주인공이 어떠한 갈등과 벽에 부딪히고, 어떻게 그것을 극복해 나아가는 지 훌륭하게 풀어내고 있다.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지도 작위적이지도 않으면서 개별적인 매력을 드러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5. 결론... 아닌 결론.
아마 내가 라이트노벨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무엇보다 '소설'로써 그리 높게 치지 않는 이유가 이러한 장편에 대한 취향일 듯 하다. 짧은 분량 안에 캐릭터와 사건을 다 부각시키기 위해서 활요된 너무나도 '인위적'인, '작위적'인 설정과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나 할까.
덧1.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작성한 공개 포스팅.
실은 '글 작성' 버튼이 어딨는지 기억도 안나서 한참 헤멨다.
덧2.
근데 쓰다보니 결국 무슨 결론을 내리려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 요는 (생각없이 쓰여지는 "일부") 라노베 까는건가.
덧3.
이걸로 올해 포스팅 숫자는 다X과 동일!


